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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원을 팝니다

SF 단편

1.0


첫째가 태어나고 분만실을 나왔을 때 내게 가장 먼저 연락을 한 것은 광고 회사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줄 수 있는 혜택들을 줄줄이 나열했고, 기간 한정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물론 그놈의 한정된 기간은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다.)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새 생명이 태어난 걸 어떻게 알아차렸을까. 의사가 리베이트라도 받은 걸까 했다가, 아예 병원 측에서 통째로 광고사와 계약을 했을 거라 짐작했다. 내 옆에 있는 아저씨도 같은 문자를 받은 걸 봤으니까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땐 TV 채널이 5개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에 신문이 도착하면 가장 먼저 채널 편성표를 살폈다. 신문 한 면을 통째로 차지한 그것 덕분에 오늘은 몇 시에 무엇을 하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때는 인터넷이 아니라 PC통신이란 걸 사용했다. 띠딧디띠리디 하는 소리(전화버튼음이었다)와 함께 - 보통 가래 끓는다고 했던 - 모뎀 접속음이 아직도 아련히 떠오른다. TV 채널과 마찬가지로 PC통신 서비스 업체도 세 개밖에 되지 않았다. 학점 망친 대학생들이 선동열 방어율을 찍었다고 하던 시절이 이야기다.

인터넷의 여명과 황금기가 바로 그때였다. 미성년자가 사이트 회원 가입을 할 때는 보호자의 허락을 받았다는 체크 박스 하나만 클릭하면 되고, www.warning.or.kr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을 때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장 비싼 광고는 신문 전면 광고였다. 광고 하나에 그때 돈으로 억 단위나 하는 그것은 신문의 가장 큰 밥줄이었다.

사정은 TV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신료를 받는 KBS1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고로 방송을 지탱했다. 뒤이어 등장한 케이블 TV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광고를 뿌려댔다. 지상파 시절 안 본 광고가 있으면 집중해서 머릿속에 수집하던 내게, 광고란 사실 엄청 지루한 것이라고 가르쳐 준 게 바로 케이블 채널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광고는 고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함께 광고도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는 WBC의 포수 후면 광고였다. 한 블로거가 한일전에 포수 뒤쪽 광고판이 일본어라고 불평을 하자(작은 것이지만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건데 우리 기업들은 뭐하나 라는 내용이었다) 거기 댓글이 달렸다. 그곳은 회색 스크린으로 되어있고, 각국에 송출되는 방송 안에서만 그 광고가 보인다는 것이다. 지역별로 다른 광고를 송출할 수 있기에 경기장은 같은 광고판으로 여러 개의 다른 광고를 팔 수 있다는 건 마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두 번째 버전과 같았다. 하나만 만들어 놓으면 무한한 평행세계에서 가져와 무한히 팔아먹을 수 있는 그것은, 마치 회색 스크린 안에 무한에 가깝게 많은 광고를 따로 띄울 수 있는 현실의 그것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것도 그 즈음 일이었다. 처음에는 유료 중심이던 어플들이 무료로 풀리는 대신 하단에 광고를 띄우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는 인터넷도 마찬가지였다. 구글이라는 괴물이 개인들도 자신의 영역에 광고를 띄워 돈을 만지게 해 주자 온갖 것이 다 광고로 도배되었다. 블로그 배너, 페이스북 포스팅과 댓글까지 모든 게 다 광고 수단이 되었다. 몇몇 이상한 놈들이 자해를 하며 사람들의 클릭으로 돈을 번 것도 그 시기였다.

광고가 다시 급변한건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이미 나온 지 오래였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증강현실 기술은 포켓몬 GO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짧았던 VR(Virtual Reality)의 과도기를 넘어, BCI(Brain–Computer Interface)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세상 모든 것이 다 광고가 되었다. 건물 위의 대형 광고판은 회색으로 변했고, 광고 회사들은 건물주들의 허리둘레를 늘려주면서 사람들의 정신을 훔쳤다. 예전에는 정지된 그림 하나 달랑 있던 그것들이 이제 사람들 머릿속에서 시끄러운 소리와 화려한 빛을 뽐내었고, 시내 교통사고의 원인 1순위로 꼽힐 정도였다. 정부는 뒤늦게 관련 법안을 제정하려 했지만, 광고 회사와 관계가 있던 몇몇 높으신 분들 덕분에 그것은 질질 끌리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이미 사람들은 광고 차단 프로그램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광고 회사들은 방침을 바꾸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광고를 보는 대가를 지불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시대에 광고를 보는 대가로 사이버 머니를 주던 것이 현금으로 바뀐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 사이에 현금과 사이버머니의 경계가 사라졌다고 하는 편이 옳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태동했던 페이 시스템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사람들은 돈에 멀어 무분별하게 광고를 섭취했다. 누군가는 광고를 보는 것만으로 먹고 살았지만, 일부 극소수의 이야기였다. 그들의 뇌는 순식간에 흐물흐물해졌지만, 원래 그러던 사람들이라 이슈는 되지 못했다.

이것도 순식간에 레드 오션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장을 찾던 광고 회사들은 이제 아이들에게까지 손을 뻗었다. 그들은 양육비를 지원하는 대신, 아이에게 들어가는 광고를 독점하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다. 무한 경쟁 속에서 가계지출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부모들은 그들의 마수에 걸려들었고, 아이들은 유년기를 상상과 창의력 대신 자본의 그림자 속에서 보내게 되었다.

나 역시 그런 부모 중 하나다. 신생아실의 유리창 너머를 보며 나는 아이에게 사과했다. 그것은 능력 없는 아빠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2.0


내 첫 직장은 비정규직 야간 경비였다. 부모님은 내 학비를 보탤 돈이 없었고, 광고 회사에서 주는 양육비가 끝나자마자 나는 내 손으로 먹고 살아야 했다. 그마저 없었더라면 난 틀림없이 길바닥의 올리버 트위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광고 회사는 내 유년기를 도넛 회사에 팔았고, 나는 BCI를 마치고부터 끊임없이 도넛 회사의 CM송을 들으며 자랐다. 그 덕에 계약이 해지된 지금까지도 뇌 속에 깊이 박힌 CM송을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면서 야간 경비를 하고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부모가 아닌 당사자가 회사와 계약이 가능했다. 덕분에 나는 18살 생일에 그때까지 받았던 것 보다 더 많은 메일을 받았다. 생일 전날 마지막 한탕으로 광고 회사가 내 메일 주소를 팔아넘긴 것이었다. 난 그들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두 개 정도만 해도 학비는 벌 수 있었지만, 더 이상 광고에 시달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제 도넛이라면 지긋지긋했다. 심지어 첫 몽정이 도넛에 끼고 사정하는 거였으니 내 심정이 어떨지 짐작 될 거다.

알바는 생각보다 쉬웠다. 하는 일이라곤 CCTV를 보다가 한 번씩 순찰을 도는 게 전부였다. 내 사수는 머리가 하얗게 샌 50대 아저씨였다. 그는 전직 경찰이었지만, 무슨 일인가로 그만두고 사업을 했다가 몽땅 말아먹은 뒤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체포술을 가르쳐 준답시고 몇 번 모르모트가 되어 고생이었지만, 그것도 곧 질린 모양인지 지금은 내가 딴짓하는 동안 옆에서 조는 게 다였다. 다른 회사 같으면 근무 태만으로 짤렸겠지만, 별 문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긴 다 죽어서 의식만 기계에 옮긴 사람들을 모아둔 곳이었다. 이곳은 새로운 시대에 나타난 다른 형태의 납골당이었다. 여기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 순찰은 두 가지 코스가 있었다. 하나는 시설 내부를 점검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외부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매뉴얼 상으로는 교대로 순찰을 돌도록 되어 있었지만, 사수는 내게 떠넘겼고, 나는 운동 삼아 그 대신 순찰을 돌았다.

원칙대로라면 한 시간마다 한번씩, 내부와 외부를 번갈아가며 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피로가 쌓인 날이었다. 커피를 마셔도 졸음이 가시질 않아 잠깐 눈을 감았다 떠보니 시간은 한참이나 지나 있었다. 사수는 옆에서 코까지 골고 있었다. 나는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손전등 하나만 들고 순찰을 나섰다. 밤공기를 마시며 바깥을 한 바퀴 돌자 잠이 어느 정도 달아났다.

건물 밖을 다 돌고 경비실로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찝찝한 기분이 들어 건물 안까지 순찰을 돌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잠겨있어야 하는 현관문이 그냥 열렸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경비실에 무전을 쳤지만 사수는 여전히 자고 있는지 대답이 없었다. 나는 손전등을 끄고 삼단봉을 꺼낸 뒤, 비상구 표시등의 불빛에만 의지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 있는 것은 대형 서버와 관리 기구들뿐이었다. 발소리를 죽인 채 돌아다니다 서버실 구석에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문 밖에서 가만히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안에서는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한창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침입자가 나오는 순간, 무릎 뒤를 향해 삼단봉을 휘둘렀다.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침입자가 쓰러지자 나는 그 위에 올라타서 양 손목을 케이블 타이로 묶었다. 사수가 가르쳐 주었던 체포술이 이런 때 쓰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침입자를 완전히 제압한 뒤 무전을 날렸지만 역시 대답은 없었다. 보안 때문에 BCI의 통신 기능도 막혀있었다. 경찰에 연락하려면 경비실까지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손전등을 켜서 불빛을 침입자의 눈에 들이대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침입자는 맞은 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순순히 끌려왔다. 하긴 덩치도 나보다 훨씬 작은데다 기습까지 당했으니 정신이 없을 게 뻔했다. 그를 끌고 경비실 문을 열자 사수는 그제야 일어났다.

“뭐야 그거?”

“서버실에서 잡았어요. 경찰에 연락하려고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침입자를 구석에 앉혔다. 그는 복면으로 얼굴 아래쪽을 가리고 있었지만 굳이 벗기지는 않았다. 내가 할 일도 아니었고, 모르는 사람하고 괜히 얽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대신 나도 모자를 더 깊게 눌러썼다.

유선 전화를 들려는 순간, 사수가 내 손을 붙잡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 친구 거 참……. 괜히 일 키우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

사수는 그러면서 주머니칼로 침입자의 케이블 타이를 끊었다.

“뭐 하는 거예요?”

내가 삼단봉을 꺼내려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대자 사수는 양 손바닥을 보이며 나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박봉에 용돈벌이 좀 하던 거야. 네 몫도 줄 테니까 좀 진정해라 응?”

그러면서 사수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내가 잡은 침입자는 요청한 사람을 서버에서 삭제 시켜주는 해커였다. 서버에 정신이 업로드 된 사람은 자살이 불가능했는데, 그래서 해커가 대가를 받고 그 사람을 ‘지워’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당 정보를 가진 사람의 서버에서 관리자 권한을 획득해야 했다. 그래서 해커가 직접 여기까지 들어온 것이었다.

“뻔 하네……. 경찰도 그렇게 해쳐먹다 짤린 거죠?”

나는 삼단봉을 꺼내 앞에 있는 두 사람을 견제했다. 그러면서 다른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그거 살인이나 마찬가지인 거 알아요? 나 참 돈에 눈이 멀어서, 그것도 경찰이었다는 사람이…….”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다. 갑작스러운 충격과 함께 나는 쓰러졌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2.5


눈을 떴을 때 그곳은 천국이었다. 사람들은 무한한 재화를 무한히 소비할 수 있었고, 그 어떤 행동에도 대가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죽은 게 아니라는 걸.

내가 깨어나지 못하자 의사들은 내 의식을 서버에 옮겼다. 내가 일하던 바로 그곳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이것을 감당할 만한 돈은 없었지만, 다행히 순직이라 회사 보험으로 가능했다. 하지만 끝내 범인은 잡지 못했다. 사수는 자기 이야기는 쏙 빼놓고 내가 습격당했다고만 진술한 모양이었다. 그를 고소하고 싶었지만, 내 정신이 업로드 되었을 때 그는 이미 죽고 없었다. 알고 보니 순직으로 인정받기 위해 대법원까지 간 모양이었다. 그것도 회사랑 보험사를 상대로 총 6번이나. 아마 언론에서 내 사연을 취재하지 않았다면 재판에 이기기도 전에 돈이 없어 포기했을 거다.

깨어나고 처음 한 것은 가족들과의 통화였다. 내게는 잠깐이었지만, 그 사이에 부모님은 폭삭 늙어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이야기를 했다. 그땐 내게 줄 수 있는 게 사과밖에 없었다고 하는 당신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보니,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제 막 업로드 된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선 그걸 환상통이라 했다.

적응하고 나자 이른 나이에 업로드 된 게 오히려 행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곳은 천국이었다. 옛날에 봤던 소설 하나가 있다. 우연히 물질재조합장치가 발명되고, 발명가는 그것을 자가 복제 시켜서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물질적 가치에서 해방되었다. 필요한 것은 만들면 되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물질을 재조합하는데 에너지와 재료가 필요했고, 그래서 사람들은 쓰레기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에는 땅과 바다와 공기를 소모하다 서로를 잡아다 소모하기 시작해서 지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걱정이 없었다. 어차피 여기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전자 신호에 불과했다. 원한다면 80년대 사이버 펑크처럼 네온색 가득한 세상을 만들 수도, 아니면 반대로 푸른 자연으로만 가득한 세상을 가질 수도 있었다. 지불할 것은 내 욕망뿐이었다. 거기다 더 이상 육체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이제 먹고 자지 않아도 되니 모든 것을 빨리 소비했다. 1001가지 명작 영화를 알파벳 순서로 보고, 재패니메이션을 63년작 아톰부터 빠트리지 않고 볼 수 도 있었다. 입력과 출력 사이의 간격이 사라지니 게임 속 반응속도도 증가했다. 전에는 플레이 할 엄두도 못 냈던 FPS 게임에서 백발백중하는 걸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다고 이곳은 유령들이 과거만 보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죽어서도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통은 생전에 그쪽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나도 자극을 받아 무언가를 시도해보았지만, 곧 그만두었다. 무얼 해도 다른 사람들의 수준을 따라 잡지 못한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대신 나는 계속 소비했다. 저주를 받고 걸신이 들려 자기 몸을 먹다가 이빨만 남은 에리식톤처럼 나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탐했다. 하지만 그것은 밑 빠진 독처럼 계속 새어나가기만 했다. 그 무엇도 나를 채울 수는 없었다. 무한한 재화가 있지만, 상품은 무한하지 않았다. 마지막 한 조각을 먹고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더 큰 허기를 느꼈다.

사람들은 그것을 불감증이라고 불렀다. 업로드 된지 오래 될수록 더 잘 걸린다고들 했다. 다들 증상은 비슷했다. 무력감과 의욕감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그건 현실의 우울증과 흡사했다.

내가 불감증 커뮤니티에 들어간 건 그 즈음이었다. 거기는 나처럼 불감증 걸린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토해놓는 곳이었다. 우울할 때는 나보다 더 우울한 사람을 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던가. 나는 소비를 그만두고 그곳에 죽치고 있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났다. 물론 비슷한 사람이 모여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뉴비를 배척하지 않는 분위기가 더 마음에 들어서 더욱 거기에 빠져든 것 같다. 다른 모임들은 멤버들이 정체되다보니 새로운 멤버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밖에서도 커뮤니티를 고인물로 만들어 썩게 하는 게 친목질이었는데, 여긴 이미 다 죽어서 나가는 사람이 없으니 그런 경향이 더 강했다. 그래서 내가 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커뮤니티가 바로 불감증 모임이었다.

그곳의 중심은 다니엘이란 사람이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대답을 해주는 게 다였지만, 그것만으로 사람들은 그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 산 사람의 우울증에 관해 공부하는 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렇게 충고해 준 것도 다니엘이었다. 산 사람의 우울증에 관한 연구는 세로토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따라서 처방도 약물이 주가 된다는 것이다.

- 그것 비슷한 사이버 약품을 만들 수는 없나요?

내 짧은 한마디에 커뮤니티가 술렁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놓고 쉬쉬했고, 다니엘만이 내게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 그런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딥웹으로 안내했다. 배타성이 다른 곳보다 더 심하기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곳이었다. 거기서 나는 사람들이 동요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곳은 마약쟁이들을 격리해둔 곳이었다. 사이버 마약에 취해 자의식마저 희미해진 자들이 의미도 없는 말들을 신탁처럼 중얼거리는 걸 보고는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 마음의 병은 가상의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에요. 그 호기심의 말로는 보는 대로입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커뮤니티 활동으로 일시적으로 증상이 나아지기도 했지만, 불감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멍 하니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었다.

다니엘은 그런 나를 많이 걱정했다. 그는 내게 ‘곧 받을 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보낸 건 서버 관리자였다. 그는 내 소비활동이 멈춘 것을 보곤 추천 상품의 카탈로그를 보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나를 유혹할 수는 없었다. 이 말을 하자 다니엘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커뮤니티 사람들을 잘 살펴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내 호기심을 당겼다. 그의 말대로 커뮤니티의 통계를 살펴보자 곧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기는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의 회전이 빨랐다. 올드비들의 활동이 빨리 끝나고 그러는 사이 꾸준히 뉴비들이 들어왔다. 사람들이 자기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오직 다니엘만이 눈치 채고 있었다. 하지만 다니엘도 그들이 어디로 어떻게 사라지는지 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것이 내 호기심을 당겼다. 사라진 올드비들의 행적을 쫓으며 마치 미스테리물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만족을 모르는 식욕이 열정으로 타올랐다. 나는 우선 커뮤니티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흔적을 되짚었다. 다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냥 조금씩 활동이 줄어들다 어느새 존재감이 없어진 거였다. 나는 말 그대로 업로드의 세계를 샅샅이 뒤졌다. 그들의 지인들을 일일이 만나가며 행적을 물었지만, 어디서도 그들은 찾을 수 없었다.

돌파구는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나는 그동안 활동이 ‘없어진’ 사람들만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SNS에 자신이 소비한 것을 자동으로 연동시킨 사람은 없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질 않고 있었다. 이걸 알아차린 건 순전히 우연의 일치였다. 새로 나온 드라마가 시청률 1위를 했는데, 내 주위에선 다들 평이 좋질 않았다. 그래서 누가 많이들 보나 통계를 살펴보니 시청자들의 배경이 너무 제멋대로였다. 보통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은 시청자 통계에서 그 특징이 보이는 법이다. 이상하게 여긴 나는 이걸 봤다고 SNS와 연동시킨 사람들을 찾아보다가 이들이 불감증 커뮤니티에서 어느 날부터 사라진 사람들이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 머리 속에서 번갯불처럼 생각 하나가 팍 튀었다. 혹시 서버를 운영하는 회사가 업로드 된 사람들을 팔아 돈을 벌고 있는 게 아닐까.

죽은 자들의 소비도 현실의 소비에 영향을 끼쳤다. 그들이 소비는 통계가 되고, 그것은 곧 마케팅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죽은 자들을 잡아다가 강제로 소비 시키는 것으로도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나는 성인이 되어 겨우 벗어난 광고 회사에 죽어서 다시 매인 셈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이론이 옳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활동을 멈추자 어딘가로 끌려간 것이다. 가상의 납치는 현실의 그것보다 훨씬 쉬웠다. 현실에선 내 육체를 누군가가 직접 잡아가야하지만, 서버에서는 관리자가 명령어 하나만 입력하면 나를 격리시킬 수 있었다.

그들이 나를 끌고 간 곳은 치료소라는 데였다. 관리자는 의사 행세를 하며 사이버 우울증이란 진단을 내렸다. 그들은 가상의 치료약을 내게 주사했고, 나는 곧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전에 봤던 그 사이버 마약이었다. 투약과 동시에 고양감과 충족감이 나를 감쌌다. 이젠 존재하지 않는 뇌가 가상의 도파민을 받으며 오버클럭을 시작했고 나는 편집적으로 던져진 것들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실제 마약은 반감기가 존재하고, 뇌의 도파민 수용체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줄여버린다. 하지만 사이버 마약엔 그런 게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치료소에서 끊임없이 마약을 맞으며 끊임없이 소비했다.

그들이 나를 놓아준 것은 내가 불감증에 시달린 만큼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풀려나기 직전에 그들은 아직 잡혀있는 사람들을 슬쩍 보여주었다. 가상의 뇌가 녹아서 흐물거릴만큼 마약을 맞으며 강박적으로 소비하는 그들의 모습은 무언의 경고였다. 입을 다물고 억지로라도 계속 소비하지 않으면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 그들은 내 유년기를 훔치고, 사춘기를 강간하고, 이제 내 죽음마저 더럽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가로막았던 해커가 왜 그 일을 했는지를. 나는 필사적으로 그를 찾아 헤맸지만, 대신 그가 재산 손괴와 불법 침입으로 징역형을 받았다는 뉴스만 발견했다. 살인 혐의가 없다는 데 놀라기엔 나는 이미 너무 닳아있었다.

다행히 운명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그 직후에 새로운 소식이 들렸다. 그것은 업로드 된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육체에 관한 내용이었다. 서버로 옮긴 정신을 다시 클론 육체에 옮기는 임상 시험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프로젝트는 폐기되었다. 육체에서 기계로 정신을 옮기는 건 가능하지만, 기계에서 육체로 정신을 옮기는 건 불가능했다. 어떤 방법을 써도 그것은 복사-붙여넣기만 되었다. 따라서 똑같은 정신이 하나는 서버에, 다른 하나는 새로운 육체에 동시에 존재했다. 새로운 육체에 담긴 정신은 자신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하고 자살했다.

나는 가까스로 프로젝트 실무자와 접촉했다. 그는 이 사실을 내게 경고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그가 요구한 돈이었다. 가상 세계에 있는 내겐 돈을 벌 수단이 없었다. 만약 작가였다면 작품을 팔아 돈을 마련할 수 있었겠지만, 내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

운명이란 게 존재한다면 바로 이 순간이었다. 포기하려던 그때, 나는 도넛 광고를 다시 보았다. 현실의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자 그들은 가상의 도넛을 만들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마케팅 방향을 새로 정했고, 그것은 곧 큰 성공을 거두었다. 죽은 자들도 인정한 도넛. 그것만큼 매력적인 광고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뻔했다. 그래서 나는 선수를 쳤다. 내가 앞으로 볼 광고를 그들의 것으로 뒤덮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영원히. 그래, 내 영원을 그들에게 판 거다. 물론 그들은 내 꿍꿍이가 무엇인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영원을 대가로 새로운 육체를 위한 돈을 손에 넣었다.



3.0


“이봐, 일어나.”

다시 태어난 내게 처음 말을 건 것은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이었다. 그는 밤중에 몰래 기기를 돌리면서 혹시나 일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나는 새로운 육체를 확인하고는 잔금을 치렀다. 내 정신에 연동되어있던 계좌는 다행히 잘 작동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육체에 담긴 것은 내 정신 그 자체였으니까.

필요한 물품들을 사고는 나는 전에 다니던 직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많은 시간이 흘렀으면서도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경비들은 같은 시간에 같은 코스를 돌았고, CCTV는 언제나 보던 곳만 향해 있었다. 나는 그 사각을 통해 서버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 BCI를 서버에 접속시켰다.

“안녕.”

“안녕.”

나는 나와 인사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오리지널 나였다. 지금 나는 그저 복제일 뿐이었다.

“준비됐어?”

“이제 도넛은 질렸어.”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것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것이라곤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그는 이미 옛날에 죽었으니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BCI로 접속해도 돼? 방화벽에 뇌가 타버릴 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IT 아저씨들이 포스트잇에 적어놨던 관리자 코드가 아직도 그대로더라고.”

“그럼 됐네. 이제 진짜 마지막이군.”

“그래.”

나는 눈을 감고 손을 뻗었다. 서버 안의 그가 나와 손바닥을 마주 대는 게 느껴졌다.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울컥 하고 올라왔다.

“왜 그래? 누구 죽어?”

나는 그가 웃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이제는 해야지. 나는 관리자 코드로 그를 삭제했다. 순식간에 그는 서버에서 지워졌다. 그것으로 오리지널 나는 끝났다. 서버 안의 전자스핀 몇 개가 그 방향을 바꾸는 것으로 하나의 존재가 끝을 고한 것이다.

당연히 나는 그 뒤에 붙잡혔다. 그리고 나를 죽인 해커가 그랬던 것과 같은 혐의로 기소 당했다. 나는 불법 침입은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재물 손괴? 내가 지운 것은 내 정신이었다. 내가 내 것을 버리는데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한가? 살인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자 나는 그것은 살인이 아닌 자살이라고 받아쳤다. 어쨌든 내가 나를 죽인 거니까.

논쟁은 쓸데없이 길어졌다. 그동안 나는 불구속 입건되었다. 법정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서버 안에서 마약을 맞으며 소비를 강요당하는 사람들의 실태에 대해 고발했다. 그러자 여론은 내 쪽으로 돌아섰다. 마지막 재판까지 가서 나는 불법 침입에 대한 벌금만 물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든 비용은 모두 죽은 내가 영원을 팔아 번 돈으로 충당했다. 내가 회사를 역고소해서 번 돈은 그가 영원을 팔아 번 돈과 비슷했다. 나는 그의 부모님에게 그 돈을 모두 드렸다. 이제 그분들은 자식에게 사과 말고도 줄 수 있는 게 생겼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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